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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기쁨과 힘듦
2025년 11월 5일에 우리 아들이 태어났다. 100일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껏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다른 차원의 기쁨과 힘듦”이다.
와이프와 아이를 갖자고 결정할 쯤 “2세”에 대한 생각이 좀 더 구체화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재밌는 감정은 삶의 연속성이었다.
30대 중반 이후 체력이 급감함을 느끼면서 나 혼자 인생을 살 수 있고 나는 정말 오랫동안 건강하게 혼자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내가 예전에 자주했던 말 중 나는 기술이 허락하면 외계인 만날때까지 살고싶다는 거였는데 요즘에는 외계인은 커녕 당장 십년 뒤 병원 신세 안 지려면 어떻게 해야 남은 건강을 그나마 챙길수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영생에 대한 농담을 할 수 있을만큼, 나는 꽤 오랫동안 체력이 좋을거라 믿고 살았다. 그러니 “나”의 연속성에 대해 큰 고민하지 않았던 것인데, 체력이 꺾이고 나라는 존재가 종료되는 시점이 꽤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안 이후에는 “2세”에 대한 생각이 좀 더 확고해진 것 같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나의 자식은 내가 이 세상을 영원히 살게하는 방식 중 하나가 아닐까? 나의 성격과 나의 생김새를 닮은 한 존재가 내가 소멸해가기 시작할 때 맹아의 에너지를 지니고 나와 나의 종료 이후에도 나 대신 삶을 이어나간다.
이런 생각이 내가 좀 더 아이를 원하게 만들었던거 같다. 아이가 외계인을 대신 구경하는 거고, 그러면 그건 내가 외계인을 구경하는 거다.
하지만 아기가 세상에 나오고 나니 생각의 변화가 또 생겼다. 이 작은 인간은 나의 영생을 구현할 인물은 맞지만 그가 사는 방식이나 생각은 나의 것과 터무니 없이 다를것이고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목도 가누지 못하는 작은 인간이 이제 제법 앉아있을 수 있고 자기 나름의 의사표현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내가 그를 절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지금도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안되면 우는 아기인데 나를 힘으로든 두뇌로든 넘어서는 10대, 20대 시기에 내가 어찌 이 친구에게 삶의 방향과 방식을 얘기해줄 수 있겠는가?
삶을 굳이 운전을 하는 여행에 비유하자면 이 친구가 살아갈 (나의 연장된) 삶은 운전대를 이 친구가 잡고 있고 방향과 목적지는 아무도 모른채 흘러갈 것이다. 나는 그 방향이 굳이 무엇인지 알고싶지도 않고 다만 이 친구를 통해 그 여행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다. 어쨌든 내가 운전하지 못해도 차가 굴러가잖아. 다만, 이 여행에 동승하는 대가가 어떤것인지는 아주 자연스럽고 고통스럽게 따라왔다.
아기를 맞이하고 기른다는건 유한한 존재가 자신의 시간을 확장할 수 있는 “다른 차원”의 기쁨을 주지만 이에 따르는 노고는 험난하다.
잠을 못자서 체력이 떨어지고 체중 밸런스가 무너지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고 이쁜 아기를 향해서도 아주(아주아주) 가끔씩 짜증과 서러움이 올라온다. 그럴때마다 부모가 이러면 안되지 않나? 와이프는 나보다 훨씬 힘들지 않나? 하는 반성으로 나를 다잡는데 이 과정이 인격수련을 강제로 하는 것 같아서 매우 마음이 힘들지만 다 내가 나아지는 과정이겠거니 하는 생각이다.
아직 100일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느끼는 수많은 기쁨과 해주고 싶은 말들이 이 친구의 1년, 2년, 그 후를 함께하면서 얼마나 더 커질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그 과정을 감사히 보낼 것이고 그 과정을 가능하게 해준 우리 와이프한테 정말 큰 고마움과 사랑을 느낀다.